'에세이라 하기에는'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1/07 줄줄이 비엔나
  2. 2010/08/18 복싱 3년차가 말하는 복싱
  3. 2010/04/22 listen
  4. 2010/03/04 사과
  5. 2010/03/01 고약한 취미
  6. 2010/01/22 조잡한 인생설
  7. 2010/01/09 엇갈려 달린다
  8. 2009/12/27 빈털털이 인생
  9. 2009/11/24 기대하지 않으면 되는건데
  10. 2009/11/23 은행가기
  11. 2009/10/30 오늘도 다치게 하다
  12. 2009/08/10 여름, 정동진 독립영화제 (2)
  13. 2009/05/07 생애 첫 해외 비행의 품격
  14. 2009/04/06 오늘도 나는 인천공항리무진을 탄다
  15. 2008/12/26 정리가 찾아 온 날
  16. 2008/11/20 내 안에 나이테 (1)
  17. 2008/11/10 요플레, 유통기한 그리고 프랑스 사람


집에 들어오는 길에.

머릿속에서는 차를 가지고 다시 나가서 해장국집이라도 찾아 볼까 하는 생각이.

번거로운게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편의점이 보였고.

차를 가지고 이 시간에 해장국집을 찾는 건 더욱 번거로워 보이게 되었다.

그대로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컵라면을 집김치랑 먹는데. 어쩐지 궁상 맞아 보였다.

게다가 해장도 되지 않았다.

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나. 보다가.

햇반을 뜯었고 두어 숟가락 만에 먹기를 그만 두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오렌지쥬스라면 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줄터였다.


쉰 오렌지 쥬스는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상황은 이렇다.

해장의 욕구는 그대로이나.

배는 찼고, 입은 텁텁해 식욕을 잃었으므로.

이제와서 다시 차를 타고 해장국집을 찾는 건. 더더 더욱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방 가운데 가만히 앉아 이런 생각을 한다.

"해장국집을 찾아 차를 타고 나가는 건 결국 번거로운 일로 판명났다. 나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런데 눈물이 나네?




저작자 표시
Q i s m l 2011/01/07 02:19


지금은 몸 여기저기가 조금 고장나서 쉬고 있지만, 나는 복싱 3년차다.

복싱은 상당히 과격한 운동이다.

링 위에서 상대를 쓰러트려야하는 격투기다.

때문에 복싱을 오래, 애정하며 하다보면 몸 여기저기에 적신호가 온다.

허리, 무릎, 어깨 관절에 이상이 오고 늘 근육통에 시달린다.

그것이 복싱이다.


요즘에 복싱을 생활체육으로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시작은 그랬다.

언론에서 다이어트에 좋다며 복싱을 소개하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복싱체육관에서는 생존을 위해 또 복싱의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생활체육으로서의 복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적당한 이슈가 되었고,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체육관을 찾고 있다.


내가 다니는 대성체육관은 홍대에 있다.

홍대라는 특수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우리 체육관에는 나름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

다이어트를 위한, 여성을 위한, 직장인을 위한, 어린이를 위한, 이런 코스나 강의는 없다.

애들부터 아저씨까지 누구든 오면 줄넘기부터 하고, 기초스텝과 원투동작으로 몇 달을 간다.

6개월 전까지는 감히 링에 오르지도 못한다.(요즘은 많이 타협해서 3-4개월 정도로 낮춘 듯 ㅋ)

관장님이 쿨하면서도 굉장히 고지식하다.

그렇기에 다이어트를 위해, 적당한 건강을 위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2-3개월이면 보이지 않는다.

대신 10명에 1명 정도 6개월을 넘긴 사람들은 중간에 잠깐씩은 쉬어도 절대 복싱을 끊을 수 없게 된다.

취미로 시작해서 뭔가 본격적이 되는 것.

위험한 것들은 대체로 중독성이 강하다. 복싱의 매력 역시 그것에 있다.


언론에서 말하는 복싱의 다이어트 효과에 대해 내가 느낀 바로 말하자면,

복싱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살이 잘 빠지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다.

복싱하면 TV 등 미디어에서 잠시 비춰지는 고된 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떠올리는데,

그건 정말 선수들이나 하는 거고, 체육관에 다니는 어떤 일반인에게도 그렇게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


복싱은 고독한 운동이다.

가면 관장님께 인사하고, 혼자 줄넘기 하고 스텝 뛰고, 새도우하고, 샌드백치고, 웨이트 조금하고 줄넘기 하고, 관장님께
인사하고 돌아온다.

처음에는 그 사이사이에 스텝이나 펀치를 알려준다. 그리고 또 혼자 연습이다.

TV에서처럼 빡세게 운동시키고 못 먹게 하고 하는거 절대 없다.

다만 복싱을 오래하면(최소 6개월 이상) 체중이 본인에게 적당하게 맞춰지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약간 마른 편이라, 운동을 하면 살이 붙는다. 운동과 함께 많이 먹게 되기 때문.

반면에 약간 비만인 사람은 살이 빠진다.

막 많이 찌고, 많이 빠지고 하는게 아니라, 적당하게 찌고 빠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형은 건강해진다. 과격하기에 다치는게 많아서 그렇지.

음 이건 우리와 같은 체육관에 한해서라고 해야겠다. 요즘엔 '적당히 타협한' 체육관도 많다고 하니까.


살 빼는 건 TV에서 보듯이 정말 간단하다.

안먹고 계속 운동하면 된다. -_-

복싱선수들이 시합을 앞두고 살을 빼는 건, 다이어트 하는게 아니라 체급을 낮추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맞는 체중으로 지내다가, 시합이 잡히면 체급에 맞게 체중을 조절한다.

찌워서 체급을 올리거나, 빼서 낮추는 것이다. 대부분 빼서 낮춘다.

이유는 헤비급을 빼고 복싱에선 스피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체급을 올리면 몸이 둔해지지만, 빼면 원래 파워에 스피드가 붙는다.

그렇기에 시합 한달 전이 되면, 살을 빼기 시작한다.

우리 체육관에도 선수들이 있는데, 보면

하루에 한끼만 백반으로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운동만 한다.

그것도 매우 과격하게. 살이 쭉쭉 빠질 수 밖에 없다.

시합 끝나면? 금세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스포츠로서 복싱은 정말 매력적이고 추천할 만하다.

다만 다이어트 등 기타 다른 목적으로 한다면 금방 지루해하고 효과도 없다며 그만 둘 수 밖에 없는 스포츠다.

아니 복싱 뿐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며칠만에, 고작 한두달만에 살을 쏙 빼주는 운동은 없다.

있다고 하는 놈 있으면 그 새끼 나한테 데려와봐. 나도 살 좀 빼게.

여기 살 빼러 오는 곳 아니야. 존 말 할 때 그냥 가. 알았지? 

체육관에 상담와서 '살 많이 빠지나요?'라고 묻는 사람에게 우리 관장님이 하는 말이다.

저런 새끼들이 나중에 살 안 빠진다고 사기라고 소문내고 다닌다니까.

역시 관장님 말씀이시다.

so cool.


그나저나 나도 얼른 몸 추스려서 다시 나가야겠다. 아우 신나. :D


T a g l 2010/08/18 01:21



나는 아마도 강변으로 내려가는 도로에 서 있었던 것 같아.
아스팔트 가운데 칠이 벗겨진 노란 중앙선이 보였거든.

싱그러운 내음이 나는 물이 무릎까지 찰랑거리고 있었어.
바지를 걷고 있었는데, 사실 큰 도움이 안됐어.

왜냐면 난 물 속으로 수영을 해야한다는 걸 느꼈거든.

무언가 미끄러운 게 발가락을 스치고. 사라졌어.
커다란 고래였는데 어느새 난 물 속에 들어와 있었지.

시원했어 가슴 속까지 짜릿했지.

손을 내미니까 몸이 앞으로 움직였어 마치 우주에서 유영하는 기분이랄까.
하긴 물 속도 공기가 없으니까 같은 걸꺼야.

난 물에 잠긴 다리 아래로 성당 첨탑을 지나.
도로에 줄지어선 자동차를 들여다봤어.

찰랑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울렸어.
물고기들이 나무가지에서 뛰어내리고.
나무들은 물 아래에서 잎을 피웠지.

고래가 다시 나타났어.
꼬리지느러미를 잡자, 엄청나게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어.
마치 나는 것처럼 빠르게 물속을.

숨이 가빠져서 기분이 좋아질 때 쯤 놈은 꼬리를 휙하고 흔들어 나를 물 밖으로 던져버렸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중. 가장 기분 좋은 꿈 이야기야.



Q i s m l 2010/04/22 17:31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

차가운 백열등 걸린 1톤 트럭 한가득 사과다.

지저분한 모자 아래 희끗한 머리. 두꺼운 항공잠바 움츠리고 쭈그려 앉아. 

남자 사과를 씹고있다. 

눈을 내리깔고. 느리게. 으적. 으적.


내 품의 봄이.

부끄러워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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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a g l 2010/03/04 23:48


나에겐 남들이 알면 조금은 혐오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를(그러나 나는 태연자약한) 악 버릇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먹고 남은 여분의 음식물, 주로 과일이나 채소 혹은 잘 썩지 않는 음식물들을.

방치. 하는 것이다. 


이게 고약한 버릇이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누군가 집에 먹지 않는 삶은 고구마가 5일이나 그대로 있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우리집엔 3주된거 있는데"라고 했는데. 모두가 뜨악한 눈으로.

그래서.

귤 하나도 책상에 한달 째 앉아 있고.

음식수납장에 서너개 남은 생감자들는 봉지를 뚫고 가지를 뻗치고 있으며(가지가 뻗어가는만큼 몸뚱이는 작아지는 걸로 자가영양분공급이 아닐까).

어제는 탁구공만하게 쭈글어들어 미니어쳐가 된 사과 하나(처음엔 주먹보다 조금 컸으나)를 결국 버렸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지만, 냉장고에 약 1년 반 정도? 된 달걀 두 알이 있.."

"으에에엑-" 

경악하는 그들에게. 다들 이런 거 하나쯤은 있지 않아라고 물었으나 허공에 메아리.

곧이어 쏟아지는 질문들.

뭐냐 뭐냐 뭐냐 어쩔시구 냐냐냐 블라블라. 아뵤.


왜 안버리냐 길래.

"그냥. 오래됐다고는 생각되는데. 버리지 않게 되네." 라고 답했다.


물론. 비위가 워낙에 안 좋은 까닭에. 금방 썩는 것들이나. 냄새가 나는 것들은 바로 버린다.
(냉장고 달걀 2알만 예외. 그러나 안에서 그들은 얌전하므로... 만지지 않는다.-_-;;)

암튼. 그리하여.

나의 그런 버릇이나 취미가 조금은 별날지도. 그리고 살짝 고약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얘기를 들은 여러 사람들이 뜨악하며 살짝 뒤로 물러섰으므로.)


그런데 이게.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꽤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귤은. 오래 상온에 두면. 안의 열매?!가 조금씩 말라들어가 나중에 껍질만 남게 된다!
물론 어떤 귤들은 바로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버려야한다.



암튼.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가장 오래된. 달걀 두알을 청산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앞으로는 그 결과를 기록해놓기로.

전에 내 얘기를 들은 누군가 중 단 한명이 흥미로워하는 모습에서. 

기록해놓으면 재미있겠다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 






달걀은 껍질이 단단해서인지. 약 1년 반이 지났음에도. 외형상으로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고무장잡을 착용하고 놈을 꺼내 안을 확인해봤다. 매우 긴장.

독가스 대비하여 마스크착용.

사실. 가장 큰 두려움은 병아리가 뛰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시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였다.

반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한쪽으로 마치 로얄젤리처럼 응축된 상태.


하지만 의미있는 일이다.

나의 취미이자 버릇인 '방치해두기'에대한 기록이.

가장 오랜 기간동안 방치됐던 달걀 두알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될 것이므로. -_-


1년 반 된 달걀가스에의 노출이 생명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Q i s m l 2010/03/01 19:29


혼자 가는 거다.


옆에 같이 걷고 있던 사람이 조금씩 벌어져.
 
그래서 먼지보다 작아져 보이지 않아도 떼쓰지 않고 싶다.

갑자기 누군가 등에 달라붙어도.
 
밀어내지 않고 싶다. 

내가 처음 두려움에 떨며 젖은 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 사람이 옆에 있었던가. 

결국에는 내가 다시 흙으로 고꾸라질 때도.
 
그가 뒤에 붙어 있을까.


과거가 미래로 가는 어떤 대열에 나는 떨어졌을 뿐.

미래가 과거가 되어.
 
모든게 다시 희미해질 때까지 단지.
 
겹치고 엇갈리고 나란히 섰다 붙었다 갈라지고 엉켰다 풀어질 뿐.
 
아닌가. 


T a g l 2010/01/22 12:28

밉게 녹은 눈 사이로.

선로가 누워있다.

그위로 전철이 포개지고.

사람들은 밖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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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a g l 2010/01/09 14:25



원래 가진게 없는 사람은.

뭐 작은거 하나라도 주머니에 들어 있으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하루종일 불안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건.

주머니에 든 그것이 내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하는 거다.


왜냐하면 태생에 주어진게 없는 우리 같은 족속들은.

한번. 내 것이라 생각하면.

절대.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머리를 흔들며. 아니라고. 털어 내는 버릇이 있다.


T a g l 2009/12/27 21:25


기대하지 않는다.


차갑고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겠지만.


그런 감정 소모. 지쳐버려 싫어.

어떤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차갑고 매끄러운 인간이 될지라도.

어쩔 수 없다.


T a g l 2009/11/24 17:05


프랭클린다이어리를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정도로

무질서한 인생을 사는 나로서도

그저 흘러버린 시간이 아까워 불편함을 느끼는 곳이 있다.

관공서. 은행.

그 곳들은 아무리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가도

가깟으로 일이 처리되는 신기한 곳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멍하니 앉아 모니터를 보거나,

앞에 앉은 대머리 할아버지의 벗겨진 부분의 면적을 계산하는데 소모한다.


오늘도 난. 영업 종료가 다 되어가는 4시가 되어서야 데스크앞에 앉았다.

하지만 인상 좋은 직원 아저씨는 내 카드의 오류를 처리해주지 못했다.

다만 자신은 카드업무를 할 줄 모르며,

카드담당이 몸살감기에 걸려 월차를 냈고,

게다가 오늘따라 사람이 몰려 다른 직원도 바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 다시 오시면 번호표 없이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인상좋은 아저씨는 송구스러운 얼굴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뒤에서는 한 40대 남자손님이 곧 영업마감인데 일을 빨리 처리하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죠. 뭐. 그러죠. 그러죠. 하면서 은행을 나오는데.

이런 생각에 화가 슬그머니 났다.

'이래저래 1시간을... 난 그곳에서 뭐한거지..?'


내일은 얼마나 여유롭게 가야할까. 몸살걸린 직원은 내일 출근할까.

아 정말 가기 싫다. 은행.
차라리 치과 원츄.

T a g l 2009/11/23 16:27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는게 싫다.

나의 선택. 결단.

나의 실수. 오해.

나의 무지. 부족.

나의 오만. 자만.

때문이 아닐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부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랑만 아니라 숨 쉬는게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좌절하지 않겠다.

상처를 주며 태어났고 살아가지만

더 큰 희망을 이야기 할테다.



오늘도 한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나만 생각했다.

내 결정이 더 큰 희망을 피워낼 수 있기를.

잊지 않겠다. 오늘 내가 준 상처.


나의 영화.


T a g l 2009/10/30 14:36



원래 스쿠터 타고 가려 했지만, 동네절친과의 즉흥여행이 된 정동진독립영화제.

야외영화제라, 태풍으로 인한 비의 공습예보로 걱정 했는데.

일기엄포 때문에 사람들이 덜 온 때문인지 최성수기에도 정동진은 썰렁했다.

싼 민박에, 한가한 바닷가. 우리는 태풍의 수혜자가 됐다.


별빛 쏟아지는 밤은 아니었어도

사방이 산으로 병풍처진 초등학교 운동장에 돗자리깔고 모기장 치고 앉아 맥주 마시며 영화를 보니

주위가 온통 자유와 낭만이라.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영화를 보고, 감독들 앞에 나와 인터뷰하는데, 생각들이 머리를 두드리고.

영화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대화를 요구했다.


낮에는 정동진 아래로 심곡항 맑은 물에 발 담그고, 망상해수욕장에서 사람구경도 하고, 

묵호항 들러 회도 먹고.

방파제에 앉아 언제까지고 원없이 바다만 바다만 바라 보기도 하고.

돌아오는 밤이 되자 몸뚱아리는 풀 나무 내음 절절하고, 머리는 바다로 그득했다.

내년에도 가고 싶다. 정동진독립영화제. 그 땐 초청 받아서.



이제 본격적인 폭염의 시작인가.

다들. 안녕하시죠? ㅋ



+ 먼길 운전하느라 욕보신 마스터님과 영화제VIP석 확보하신 홍님께 심심한 감사를.

T a g l 2009/08/10 11:03



그날 결과적으로 나는 세 가지에 실패했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멋진 첫 해외여행계획>의 전부였다.

첫째,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충분히 설렘을 만끽할 것

둘째, 미리 보딩패스를 받아 창가 자리를 택할 것

섯째, 옆 자리에 젊은 금발의 백인여인이 앉을 것

마지막 계획은 운에 달린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아침에 조금만 서둘렀어도 충분히 달성 가능했다.
아니 전날 밤 늦게까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어떤 멘트를 날려두고 떠나야 멋질까 궁상만 떨지 않았어도 됐다.

리무진버스가 공항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 다른 모험을 앞둔 사람들처럼 폼나게 입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 나는 고작 버스 화물칸에서 짐을 끌어내면서도 낑낑 거리며, 여지없이 풋내기임을 증명했다.
물론 영국신사처럼 입장하기에 짐도 너무 많았고(장기간 어학연수였으므로) 결정적으로 팔자 콧수염도 없었다.
신사보다는 신밧드가 고용한 아라비안 짐꾼에 더 가까웠다.

창가자리는 일찍 일어난 신사들이 낚아채 갔음이 당연했다.
버스에서 내려 보딩패스를 받아 출국심사대를 지나 게이트까지 가는 나의 동선은 거의 직선에 가까웠다.
아슬아슬하게 말레이시아 산 쇳덩어리 잠자리에 올라탔을 땐,
막 500미터 허들을 마친 육상선수처럼 헐떡거렸다.
꿈꾸던 해외여행자의 품격은 고사하고 쫓기는 해외도주자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부장 아저씨는 한국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건 김부장님은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데 동남아만 가서 아쉽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무시당한다는 것,
아무래도 아내의 홈쇼핑 중독이 의심된다는 것,
사실은 로맨스 중이라는 것뿐이다.
내 자리는 기내 한가운데, 다섯 명이 한 줄로 붙은 자리의 정중앙이었다.
그건 화장실에라도 한 번 가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2명의 사람을 일어섯! 자세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굉장히 큰 비행기였지만, 내가 본 외국인은 말레이시아인 승무원 4명과
오른쪽 옆에 앉은 말레이시아인 청년이 다였다.
다행히 청년은 이륙부터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다행이라 한 이유는 청년이 너무나 옹박을 닮아,
아마도 내게 말을 걸었다면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 댔을 것이고,
모욕적이라 느낀 그는 CG없는 과감한 액션으로 날 죽사발로 만들지 모른다고 혼자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착할 때까지 내 유일한 낙은 조그마한 창을 힐끗거리는 것뿐이었다.
너무 멀리 있고, 고개를 직각으로 돌려야만 볼 수 있어 목이 아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난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거기는 목을 170도까지 돌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 병사가 얼마나 창을 보고 싶었을지 당시 난 이해할 수 있었다.

U n t e r w e g s l 2009/05/07 14:14


유리로 된 고래 같았다. 모래 색 평원을 해안 삼아 잠시 쉬러 나온.
빛에 반짝이는 몸통은 금방이라도 다시 끝없는 바다로 뛰어들 것만 같았다.
고래의 옆구리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곧게 뻗어 있었고,
미지의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이 서둘러 옆구리 구멍으로 들어갔다.
고래는 얌전히 그들이 다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대학교 3학년,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그 후 몇 차례 이런저런 일(주로 마중이나, 배웅 같은)로 공항을 가게 됐다.
그러면서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은 약간의 환상까지 버무려져 더욱 깊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공항이라는 장소에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일 없이도 공항에 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음에 구름 끼고 뇌가 푸석한 날에는 어김없이 공항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곤 한다.


나는 거대한 고래의 뱃속에 앉아,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 막 돌아온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러고 있으면 마치 갓 만들어진 피가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분이 들고, 머리도 상쾌해진다.
그곳은 자유가 넘친다. 심지어 화장실세면대 수도꼭지에도, 엘리베이터 안 2층 버튼에도,
속이 다 보이는 쓰리기통에도 자유가 묻어 있다. 모두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자유로워, 너무나 자유로워!’

비행기는 자유 그 자체다. 알록달록 고유의 색을 뽐내는, 쇠로 만들어진 이 커다란 잠자리 떼들은
평소에는 줄지어 나란히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다가도
한번 비행하기로 마음먹으면 수백 톤의 몸에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쇠뭉치 잠자리의 이륙은 요란하지만 소란스러운 대신 경쾌하고,
아슬아슬하지만 위험한 대신 신난다.
나보다 몇 천배는 무거운 쇳덩어리가 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힘을 얻는다.


자유, 꿈, 희망. 관념적이기만 했던 세상의 단어들이 살아나 말을 거는 그 곳.
공항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U n t e r w e g s l 2009/04/06 14:51


흐리멍텅하던 머리 속이 어느 순간 갑자기 정리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은 예고없다.

오늘 아침 나는 두더지님 방바닥에서 달아나버린 잠의 흔적을
구차하게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이불 속에서 바로 앞에 놓인 검은 페인트 아래 나무결이 드러나는 TV 다이를
그저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돌렸을 때
맞은 편 벽에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햇살 조각을 발견하곤
'아 다 정리됐구나'고 혼자 중얼거렸다.

가슴은 가벼웠고 머리 속은 깔끔했다.
길지 않은, 짧지 않은 동면이었다.

거리의 차 소리들은 매번 빛을 실어 내가 누워있는 창문 너머로 따뜻함을 넘겼다.
황금빛 따뜻함이 벽에서 천장으로 번지면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블라인드를 타고 넘실거리는 빛 때문에 마치 거리는 한여름 같았다.

거리 너머 건물들 사이로
햇살에 반짝이며 출렁이는 바다가 있겠지.

나는 더이상 복잡하지 않았다.

2008. 12.26.  Herr Q

T a g l 2008/12/26 19:57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봤다. 두꺼운 껍데기 안 잘려진 살 위로 동글 동글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사람처럼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매 순간 살기 위해 숨 쉬고, 마시며, 종족을 번식한다. 그냥 모두 같은 동그란 띠처럼 보이지만 나이테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굵고 가는, 곧고 휘어진 나이테에는 나무가 겪었던 순간순간이 모두 기록되어있다. 좋고 즐거운 순간만이 아니라 슬프고 절망스러운 순간도 빠짐없이 들어있다. 그 것이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의 순간이었다할지라도 삶이라는 큰 여정의 나이테에서는 모두 의미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나이를 먹는 사람에게도 나이테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매일 의미 없다고 스쳐 보내는 시간의 흔적도 나무의 나이테처럼 안으로 켜켜이 쌓여가는거라면 ?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 의미없는 순간이란 없는 것이다.


T a g l 2008/11/20 00:52


요플레와 같은 유제품을 유통기한 안에 다 먹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먹는 건. 아마도 처음 사왔을 때,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나고.

심심해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요플레 두 개가 눈에 들어 온다.
하나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다. 이정도 쯤이야.

뚜껑을 벗긴다. 냄새를 맡는다. 괜찮다.
숟가락을 들고 떠 먹는다. 맛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 맛있게 느껴진다.

독이 든 버섯이나 부패한 치즈도 과감히 먹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는 프랑스 사람이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별미는 위험한 음식인 경우가 많다는 데.
일본에서는 복어 사시미를 먹다가 독 때문에 죽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데. 
입술이 얼얼할 정도의 복어사시미에서 최고의 미각을 경험한다는데.

죽음의 경계선에서 감각은 거부할 수 없는 쾌락으로 변한다. 랄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뭐.

나는 그냥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먹는 한국 사람일 뿐이니까.
아무 상관 없잖아.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느새 요플레를 다 먹었다. 
고구마를 먹었다.
한참이 지났다.

배가 살살 아파왔다. 
복통의 시작을 스스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또 잠깐 머리속에 프랑스 사람이 떠올랐다.

분석 시작 - 내가 먹은 것은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와 고구마 - 분석 끝

이상하게도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 보다 그날 오전에 찐 고구마가 더 의심스러웠다.
이상하게도 요플레는 믿음직스러웠다. 

다음 날 나는 전날 보다 유통기한이 하루 더 지난 하나 남은 요플레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꺼냈다. 요플레를 의심하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배가 아팠다. 한국인인 나는 끙끙거리며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가 문제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프랑스 사람.

하지만 다음에 또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가 있다면, 나는 아마도 주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랄까.

그런데 대체 왜 난 프랑스 사람이 아닌걸까. 랄까.


T a g l 2008/11/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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