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 n t e r w e g s'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5/07 생애 첫 해외 비행의 품격
  2. 2009/04/06 오늘도 나는 인천공항리무진을 탄다
  3. 2007/11/22 it's amazing



그날 결과적으로 나는 세 가지에 실패했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멋진 첫 해외여행계획>의 전부였다.

첫째,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충분히 설렘을 만끽할 것

둘째, 미리 보딩패스를 받아 창가 자리를 택할 것

섯째, 옆 자리에 젊은 금발의 백인여인이 앉을 것

마지막 계획은 운에 달린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아침에 조금만 서둘렀어도 충분히 달성 가능했다.
아니 전날 밤 늦게까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어떤 멘트를 날려두고 떠나야 멋질까 궁상만 떨지 않았어도 됐다.

리무진버스가 공항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 다른 모험을 앞둔 사람들처럼 폼나게 입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 나는 고작 버스 화물칸에서 짐을 끌어내면서도 낑낑 거리며, 여지없이 풋내기임을 증명했다.
물론 영국신사처럼 입장하기에 짐도 너무 많았고(장기간 어학연수였으므로) 결정적으로 팔자 콧수염도 없었다.
신사보다는 신밧드가 고용한 아라비안 짐꾼에 더 가까웠다.

창가자리는 일찍 일어난 신사들이 낚아채 갔음이 당연했다.
버스에서 내려 보딩패스를 받아 출국심사대를 지나 게이트까지 가는 나의 동선은 거의 직선에 가까웠다.
아슬아슬하게 말레이시아 산 쇳덩어리 잠자리에 올라탔을 땐,
막 500미터 허들을 마친 육상선수처럼 헐떡거렸다.
꿈꾸던 해외여행자의 품격은 고사하고 쫓기는 해외도주자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부장 아저씨는 한국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건 김부장님은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데 동남아만 가서 아쉽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무시당한다는 것,
아무래도 아내의 홈쇼핑 중독이 의심된다는 것,
사실은 로맨스 중이라는 것뿐이다.
내 자리는 기내 한가운데, 다섯 명이 한 줄로 붙은 자리의 정중앙이었다.
그건 화장실에라도 한 번 가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2명의 사람을 일어섯! 자세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굉장히 큰 비행기였지만, 내가 본 외국인은 말레이시아인 승무원 4명과
오른쪽 옆에 앉은 말레이시아인 청년이 다였다.
다행히 청년은 이륙부터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다행이라 한 이유는 청년이 너무나 옹박을 닮아,
아마도 내게 말을 걸었다면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 댔을 것이고,
모욕적이라 느낀 그는 CG없는 과감한 액션으로 날 죽사발로 만들지 모른다고 혼자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착할 때까지 내 유일한 낙은 조그마한 창을 힐끗거리는 것뿐이었다.
너무 멀리 있고, 고개를 직각으로 돌려야만 볼 수 있어 목이 아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난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거기는 목을 170도까지 돌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 병사가 얼마나 창을 보고 싶었을지 당시 난 이해할 수 있었다.

U n t e r w e g s l 2009/05/07 14:14


유리로 된 고래 같았다. 모래 색 평원을 해안 삼아 잠시 쉬러 나온.
빛에 반짝이는 몸통은 금방이라도 다시 끝없는 바다로 뛰어들 것만 같았다.
고래의 옆구리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곧게 뻗어 있었고,
미지의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이 서둘러 옆구리 구멍으로 들어갔다.
고래는 얌전히 그들이 다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대학교 3학년,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그 후 몇 차례 이런저런 일(주로 마중이나, 배웅 같은)로 공항을 가게 됐다.
그러면서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은 약간의 환상까지 버무려져 더욱 깊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공항이라는 장소에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일 없이도 공항에 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음에 구름 끼고 뇌가 푸석한 날에는 어김없이 공항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곤 한다.


나는 거대한 고래의 뱃속에 앉아,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 막 돌아온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러고 있으면 마치 갓 만들어진 피가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분이 들고, 머리도 상쾌해진다.
그곳은 자유가 넘친다. 심지어 화장실세면대 수도꼭지에도, 엘리베이터 안 2층 버튼에도,
속이 다 보이는 쓰리기통에도 자유가 묻어 있다. 모두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자유로워, 너무나 자유로워!’

비행기는 자유 그 자체다. 알록달록 고유의 색을 뽐내는, 쇠로 만들어진 이 커다란 잠자리 떼들은
평소에는 줄지어 나란히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다가도
한번 비행하기로 마음먹으면 수백 톤의 몸에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쇠뭉치 잠자리의 이륙은 요란하지만 소란스러운 대신 경쾌하고,
아슬아슬하지만 위험한 대신 신난다.
나보다 몇 천배는 무거운 쇳덩어리가 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힘을 얻는다.


자유, 꿈, 희망. 관념적이기만 했던 세상의 단어들이 살아나 말을 거는 그 곳.
공항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U n t e r w e g s l 2009/04/06 14:51

겨울이 코 앞에 다가온 날.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다.

<붉은 등 거리>-성매매가 합법화된 지역-의 환각등에서 멀리 벗어난 한적한 거리.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때 커다랗게 걸린 광고걸개가 눈에 들어왔다.

취한듯 그대로 텅빈 도로에 서서 어두운 수로 위로 반사 된 여자의 묘한 눈빛에 빠져들었다.

나를 깨운 건 요란스런 엔진소리를 내며 날아가던 낡은 차 한대.

낡고 작은 빛 바랜 파란 색 차였다.

차는 갑자기 급 제동을 했고, 이어지는 엄청난 속도의 후진.

잠시 후 도로 한복판의 작은 차에서 한 흑인이 뛰어 내렸다.

그를 보자 영화<패밀리 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를 다른 미래로 보냈던 요술쟁이가 떠올랐다.

약간은 떠들썩해 보이는 그러나 친근감 가는..

수로 쪽으로 걸어 오는 그는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큰 소리로 말했다.

"wow~ it's amazing ! oh my gash. Ou~"

나를 보며 웃고는 마찬가지 과장된 제스처로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beautiful, absolutely.. don't you think?"
"that's why i'm standing here"
"Ou... she's really cool.. i've never seen such a beautiful woman.. ha. ha. ha."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사진을 찍어 주길 부탁했다.

연거푸 amazing을 연발하며 내 어깨를 툭툭 치던 요술쟁이는 춤추듯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눈깜짝할사이. 마치 여지껏 나 혼자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처럼..

내가 물 위에서 아른 거리는 저 여자의 마술에 걸렸던 것처럼..

U n t e r w e g s l 2007/11/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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